서울시발레단 X 오하드 나하린, ‘데카당스’로 쉘 위 댄스

12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나하린은 "춤을 추는 순간에는 무대와 관객이 사라지고 오직 춤을 추는 자신만이 존재하게 된다"며 "춤을 위해서는 공간과 시간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의 이러한 철학은 대표작 '데카당스'에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데카당스'는 2000년 나하린이 이스라엘 바체바 무용단 예술감독 취임 1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작품으로, 그의 다양한 안무를 하나의 공연으로 엮어 재구성한 무대다. 작품명은 숫자 10을 뜻하는 '데카'(Deca)와 춤을 의미하는 '댄스'(Dance)의 합성어로, 20년 넘게 공연되며 매번 새로운 안무를 추가해 변화하고 있다. 그는 "'데카당스'는 하나의 고정된 작품이 아니라 무용수들을 위한 일종의 놀이터와 같다"며 "초연 이후 20여 년이 흘렀지만, 지금의 '데카당스'는 그때와 완전히 다른 춤이다"라고 설명했다.
이 작품이 긴 세월 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는 지속적인 변화를 통해 새로운 세대의 무용수들과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하린은 이번 서울시발레단과의 협업을 통해 또 한 번 '데카당스'를 새롭게 구성했다. 원래 7개의 안무로 구성됐던 작품에 1개의 안무를 추가해 서울시발레단만의 독창적인 버전을 만들었다. 그는 "연습하는 모습을 보니 서울시발레단 무용수들이 '데카당스'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음을 느꼈다"며 "더욱 섬세한 안무를 추가해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길 계획"이라고 밝혔다.

나하린은 이번 공연에서도 자신의 독창적인 움직임 훈련 방식인 '가가'(Gaga)를 기반으로 안무를 구성했다. '가가'는 어린아이가 옹알거리는 모습에서 착안한 움직임 훈련으로, 신체의 가능성을 확장하고 무용수의 감각을 극대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는 "'가가'는 단순한 신체 훈련이 아니라 우리를 웃게 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움직임의 철학"이라며 "완벽하지 않은 삶 속에서 무게를 덜어내는 과정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안무 연습 시 거울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는 무용수들이 거울이 아니라 자신의 감각만으로 움직임을 완성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번 서울시발레단과의 연습에서도 연습실 거울을 모두 커튼으로 가리고 안무를 진행했다. 그는 "농구를 하거나 요리를 할 때도 가장 중요한 순간에는 거울을 보지 않는다"며 "무용계가 거울을 보고 연습하는 전통을 만든 것은 큰 실수"라고 강조했다.
지난 10일 내한한 나하린은 곧바로 서울시발레단과의 연습에 돌입했다. 그는 무용수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확인한 후 기존 '데카당스'의 구성을 일부 수정하는 결정을 내렸다. 무용수들의 잠재력을 극대화하고 작품의 감동을 배가하기 위해 더욱 세밀한 안무를 추가한 것이다.
세계적인 거장 안무가 오하드 나하린이 직접 연출한 서울시발레단의 '데카당스'는 3월 14일부터 23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관객들을 만난다. 끊임없이 진화하는 춤의 세계를 경험하고 싶다면 이번 무대를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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