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 후퇴'로의 한 발짝, '비동의 간음죄' 검토 철회

 여성가족부가 2023년 1월 26일 발표한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이 불과 9시간 만에 철회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특히 '비동의 강간죄' 도입 검토 내용이 포함된 것이 문제가 되면서, 법무부가 전격적으로 "법 개정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내며 정부 부처 간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최근 이 사건의 핵심 당사자였던 김종미 전 여가부 여성정책국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당시 알려지지 않았던 충격적인 내부 상황이 드러났다. 특히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의 직접 감찰과 그 과정에서의 압박, 그리고 부처 내부의 위축된 분위기가 상세히 밝혀졌다.

 

기본계획 수립은 2022년 1월부터 시작됐다. 1년여에 걸친 준비 과정에서 부처 간 협의와 전문가 의견 수렴, 공청회 등 정상적인 절차를 모두 거쳤다. 특히 법무부도 '개정 검토'라는 의견을 제시했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그러나 발표 직후 정치권의 반발이 시작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발표 이후의 전개 과정이다. 김 전 국장은 2023년 2월 6일, 7시간 30분에 걸친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의 감찰 조사를 받았다. 마치 수사를 방불케 하는 이 조사에서는 비동의 강간죄 도입 추진 경위뿐만 아니라, 개인의 신념과 야당과의 관계까지 추궁당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여가부 내부의 위축된 모습도 드러났다. 회의 참석을 제한당하거나, 업무에서 배제되는 등 사실상의 보복성 조치가 있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특히 여성정책국장이라는 핵심 보직자의 업무 제한은 여성정책 전반의 후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한편, 비동의 강간죄 도입은 이미 국제사회에서 오랫동안 권고해온 사안이다. 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2018년부터 한국 정부에 이를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현행법상 강간죄가 성립하려면 '저항할 수 없을 정도의 폭행·협박'이 있어야 하는데, 이는 현실의 다양한 성폭력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최근에는 교제폭력 사건이 잇따르면서 비동의 강간죄 도입의 필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특히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의 경우, 겉으로는 동의한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강제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아 법 개정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민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최근 국회 국민동의청원에서 비동의 강간죄 도입 관련 청원 2건이 각각 5만여 명의 동의를 얻어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되었다. 그러나 정부와 정치권은 여전히 '사회적 합의'를 이유로 논의를 미루고 있는 실정이다.